thea_lee

Diary - 1화 새터

Published: January 30th 2023, 4:17:27 pm

[종료벨]

수능날 마지막 교시 종료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내 입가엔 살짝 미소가 번졌다. 작년, 고3때와는 정 반대의 개운한 기분. 올해는 느낌이 좋았다.

‘여름에 잠깐 방황하긴 했지만, 1년 동안 잘 버텼어! 올해는 훌리도 해야지!’

그렇다. 대입에는 타고난 머리, 실력과 노력도 중요했지만, 운과, 눈치게임, 심리전도 당락에는 큰 영향을 미쳤다. 수 년간의 내 노력을 서울 A대학교 B학과 합격이라는 결실로 빛내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다. 성적표와 등급컷, 점수별 대학 배치표가 뜬 후에 A대 B과 지원자 까페에 가입하고, 또 디* ***드 등등 수험생들이 몰리는 커뮤니티를 돌며 훌리활동을 펼쳤다. 나는 여기 지원자라며, 실제 내 점수보다 살짝 높게 글을 작성해서 지원 희망자들의 기를 눌렀다.

약간 싸이코 같은 닉이 눈에 띄었다. 내 글에다가 ‘고작 그 점수로 여기썼냐’며 깔짝깔짝 갈구는 댓글로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다.

“침착하자… 침착… 쟤도 허언 일거야… ”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견딜 수 없었다. 댓글전쟁이 시작되었다

ㄴdltldk0514: 그러는 님은 몇점이신데요?

ㄴㄴ네오구리: 알거없는데요? 왜요 불안하세요?ㅋㅋㅋㅋㅋ

ㄴㄴㄴdltldk0514: 아니요? 저 자신있는데요?

ㄴㄴㄴㄴ네오구리: 아 그러세요? 근데 왜 저는 님 지금 엄청 쫄리는게 느껴지죠? ㅂㄷㅂㄷ? ㅋㅋㅋㅋ

‘아, X색희 짜증나.’ 짜증나서 나도 훌리글은 지워버렸다. ‘이 짓도 못할짓이네!’

[쪽지가 도착]

네오구리 : 어? 글삭튀했네?ㅋㅋㅋ님 지금 훌리 개티나거든요? 님 그점수보다 더 낮잖아요. 아니에요?ㅋㅋㅋㅋㅋ

‘What the 개 %#$@?’ 담배갑을 들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 나만의 쉼터로 갔다. ‘후우~’

네오구리 이새낀 대체 뭐야? 프사를 눌러보았다. 검정 썬글라스에, 허세가 잔뜩 섞인, 내가 엄청 싫어하는 스타일의 본인 프사. 눈이 가려져서 정확히는 파악이 안됐지만 그래도 만나면 얼굴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니 얼굴… 기억해두겠어.’

면접 날은 아빠가 차로 데려다 주셨다. 비가 살짝 내리는 날이었다. 주차장에서 학과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검정색 독일 세단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구두와 스타킹에 물이 튀었다. 그걸 인지했는지, 차가 멈추었고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죄송합니다. 물 많이 튀었나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당 ㅎㅎ.”

실은 스타킹이 젖어서 짜증났지만, 면접날이고, 그 사람 얼굴은 젊어 보였지만, 차를 봐서는 교수 일수도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답했다. 현관에 도착하자 저학년 선배들로 구성된 면접 도우미 팀이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도착한 아까 그 차주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아 교수는 아니고 선배구나.’

“어 그래.” 그 선배는 시크하게 고개만 까딱하고 자기 갈 길을 가버렸다.

면접자 대기실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오구리는 없었다.

‘그럼그렇지ㅋㅋㅋ 면접대상자에도 못들었구나? 1차도 못넘는게ㅋㅋㅋㅋㅋ’

아무튼 나는 무난히 서울 A대학교 B학과에 합격하였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그동안 미루어 왔던 남자친구와의 약속을 하나, 둘 실행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화벨]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B과 학생회장이었다. “…참석은 자유긴 한데, 불참시 어느정도 불이익이…” 회장은 반 권유 반 협박으로 새터 참여를 독려했다.

할 일이 많아졌네. 집이 부산이라, 자취방을 구해야했고, 입주날은 새터 전날로 잡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와서 방을 꾸미고, 되돌아가시는 아빠의 얼굴이 어두웠다.

“시아야 항상 밥 잘 챙기묵고! 몸조심하고이, 매일 두 번씩 전화해애!”

아빠는 현관문이 단단히 잠기는지 세 번씩이나 확인하시고는 차에 올라타셨다.

서울에서 나 혼자 자는 첫 날.

자유로워진 만큼 커진 쓸쓸함에 잠이 오지 않아 몸을 뒤척이다가 느지막이 잠이 들었다.

“까악ㅡ 까악ㅡ“ 아침의 캠퍼스에선 까마귀 떼가 무리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새내기들은 현관에서 모여서 버스를 기다렸다. 조는 이미 나누어져 있었다. 그냥 ㄱㄴㄷ순 인것 같았다. 조 순서로 버스에 올라타서 우리 조 남학생 중 한 명의 옆에 앉게 됐다. 창가 자리에 먼저 앉아 있는 애 옆에 앉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 이주원이라고 해요”

“네ㅎㅎ이시아예요.”

“어디서 오셨어요?”

초면의 어색한 시간을 보내려, 별 관심 없는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알게되었다. 주원은 고등학교에서 바로 입학해서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꽤나 재치있는 아이였다. 우리는 말을 놓기로 했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면서 햇살이 강하게 창으로 들어왔다.

“썬글라스좀 쓸게 누나” 주원이 일어서서 선반에서 가방을 내리며 말했다.

썬글라스를 쓰고 다시 얘기를 이어가려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허얼……!!!’ 익숙한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A대 B과 지원자 까페 네오구리???

‘뭐야? 얘 합격했어? 아 짜증나’ 갑자기 댓글배틀의 그날이 떠오르며 얘가 확 싫어지면서 기분이 너무 나빠졌다. “어 주원아 나 근데 좀 졸려. 도착할 때 까지 좀 잘게~”


‘과내 결속력을 다진다’는 그럴 듯 한 명목 아래 재미없는 일련의 주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해가 지자 선배들과의 인사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을 돌면서 개인별 장기자랑을 하고 술잔을 돌리라는것.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새터의 이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면 장기자랑 같은건 절대 안했을 것이다. 아니 새터도 안갔을 것 같다. 그 땐 왜 나도 이런걸 시키는 대로 해야만한다고 생각했을까? 난 우리 조 내의 여자 동기들과 함께 오글거리는 걸그룹 안무를 선배들 앞에서 선보였다. 그리고 술잔을 다 돌리고 나면 다음 방으로 넘어가서 다시 춤추고, 술 돌리고… 자연스럽게 술도 계속 쉼 없이 마셔야 했다.

“누나 괜찮아?”

방을 옮기는 중에 내가 몸을 비틀거리니, 네오구리 이주원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부축했다. 싫은 애가 손으로 은근슬쩍 몸 이곳 저곳을 터치하니까 술이 확 올랐다 내려갔다.

“야 됐거든.” 나는 정색하며 밀어버렸다.

다섯 번째 방이었을까? ‘이것들은 왜 한데 안모여있고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앉아있는거야?’

“자 이제 군무 봤으니까 개인별 장기자랑 다시~!”

한 정신나간 남자선배의 입에서 나온 소리. 안그래도 하기 싫어고 몸이 힘들어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 있는 상황에서 저 소리를 들으니까 진짜 바닥의 술판을 전부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 “하아……” 나는 그 소리를 한 선배의 눈을 쳐다보며,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정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임승현! 쫌 가만있어”

“야 그래 됐어”

내 깊은 빡침을 인지한 다른 선배들 몇이 나를 도와주었다.

“야 이번 애들은 눈빛에 살기가 있네?" 임승현이라는 선배가 비아냥거렸다.

나대는 인간들 특징은 꼭, 지가 뱉어놓은 말을 그냥 깨갱하기는 쪽팔린지, 저런소리 하면서 넘어간다.

‘임승현… 애들한테 조심하라고 알려줘야지.’

아무튼 개인 장기자랑은 안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내 주량을 이미 한참전에 넘어선 걸 알았다. 하지만 이제 마지막 방!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쓰러졌다. 하지만 들려오는 절망적 대화.

“야, 대학원생 형들 온대.”

“아진짜? 언제?”

“지금 거의 다온 것 같은데”

아……..ㅠㅠㅠㅠㅠㅠ

상대해야 할 두번째 무리가 몰려오고있었다.

대학원생들은 대체 왜 굳이 여기까지 올까?

그랬다.

나중에야 안 거였지만, 면접날 나를 본 도우미들에 의해 이미 내이름은 남자 선배들에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내가 합격해서 등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남자선배들은 각자 나와의 결혼준비까지 마친 후였으며, 애는 몇 낳고, 자식을 유학 보낼지 말지 고민중이었다고 한다. 내가 새터에 참석했다는 소문은 ‘새내기얼굴등급심의위원회’에서 발급한 게런티 태그와 함께 각 학년 남자 단톡방으로 퍼졌고, 불참자였던 남자 선배들과 대학원생들까지 무리해서 이 시골 수련원에 끌여들였다는 전말이었다..

내 최고 주량에 맞춰서 사망 시간을 딱 마지막 방에 맞도록 술을 조절했는데, 쎄컨드 웨이브라는 변수는 생각하지 못했다. 게임 끝판왕 깨기 직전에 갑자기 1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느낌?

다시 네 개의 방이 더 생겼다. 아까 한 거 또 하기도 민망…했지만 다른건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연습한 춤도 술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다. 도중에 여자 선배 한 명이 내게 뛰어들어 담요로 싸감고 방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치마가 뒤집어져 팬티 바람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고 한다.

“언니… 아 너무 고마워요…ㅠㅠ”

“시아라고 했지? 시아야 무리하지 말고 여자방 가서 쉬어.”

맘먹으면 그 때 거기서 나만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조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재합류했다.

‘드디어 진짜진짜 마지막 방인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데 서열 1위인 듯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신입생들 이렇게 술 많이먹이래?, 너네, 출발하기전에 이러지 말라고 내가 부탁했어 안했어?”

‘아 개멋있다, 누굴까?, 얼굴 한 번 보고싶다’ 하지만 고개를 들 힘이 없었다. 눈도 떠지질 않았다.

“애들 방으로 다 보내서 재워”

‘아 존멋 진짜, 개쩔어’ 진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고마움이 피어났다.

“아,, 형……”

‘누구야 아 형 뭐ㅜㅜ 제발 선배님 말좀 들어...!’

“왜, 장기자랑 보고싶어서? 야 얘 봐 벌써 죽었어, 누구야? 누가 애를 이렇게 만들어놨어?” 격앙된 목소리가 멋있었다.

“형 그래도 멀쩡한 애들도 있는데요…"

“그럼, 쟤는 작은방에서 쉬라고 하고 나머지 애들 해봐. 야 여자애들, 은경이하고 지선아~ 쟤 빨리 작은방에 눕혀.”

이렇게 나는 여자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혼자 누울 수 있었다.

‘누우니까 더 어지러ㅡ’

‘아 여기서 잠들기 싫어…’

‘잠들면… 안돼…’

내가 도는걸까, 하늘이 도는걸까, 바닥이 도는걸까? 시계방향으로 반시계방향으로 z축으로. 내 몸이 미친듯이 회전하는 느낌. 귀도 웅웅거렸다.

‘토할것같아…’

방에서 토하고 얼굴에 토사물 범벅을 만들 순 없어서 나는 힘든 몸을 일으켜 방문으로 기어갔다. 문을 열고 또 화장실로 기었다. 옷이 어떻게 되는 것 보다 방에다 토하는 게 더 큰 굴욕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몰래 변기까지 도착한 것 같았다.

“웩……”

거울을 보며 얼굴을 정돈하고 나왔을 때는 장기자랑은 끝나있었고, 사람들은 소그룹 여러 개로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시아 살아났네, 야 이제 다들 가서 자라”

하지만 우리 조 친구들은 이 방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걸 이미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린 후였다.

“저희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돼요? 여기가 가장 좋고 편해요.. 술도안먹이시고 ㅠㅠ”

“야 얘들 뒤에 또 인사올 애들 있어?”

“아니요 얘들이 마지막 팀이었어요”

“그래. 그럼 여기서 쉬어, 시아도 정신 돌아왔으면 여기 앉을래? 쉬고싶으면 가서 쉬고”

애들말이 맞았다. 여기서 나가봐야 양아치들이 또 입을 벌리고 술을 들이붓겠지… 이곳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려면 저 제정신 박혀 보이는 선배 옆에 꼭 붙어있어야해!

“여기 있고 싶어요”

네오구리 이주원은 손바닥이 닳아 없어지도록 선배들에게 갖은 아첨중이었다. 비열한새끼.

“형 저희 배려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라도 술 한잔 따라드릴까요”

“아니야 나는 운전해야돼 좀이따 갈거야”

‘간다고?...........좀이따?!!’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엉금엉금 기어서 이주원과 선배쪽으로 갔다.

“야 이주원, 자리좀 바꿔줘 인사드리게. 안녕하세요 이시아라고 합니다.”

“어 알어” 선배가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그 선배와 마주앉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 둘 만 대화하는 틈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빠 어디…사세요?”

“어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

“저, 좀이따 가실거라면서요… 저 좀 제발 데려가 주세요… 저 진짜 여기서 못자요..ㅜㅜ”

선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새내기 빠지면 분위기 나빠질텐데, 나 그럼 애들한테 욕먹어”

“오빠 제발요ㅜㅜ 한번만요”

“그리고 여자 신입생 한 명 태우고 사라지면 안좋은 소문날텐데? 누구 한 명 더 데려와. 2학년이나 뭐,”

신입생이 두 명이나 빠져나가는 건 너무 티가 많이날 것 같고, 선배중엔 친한 사람도없었다. 어떻게구해 한 명 더를...

“여기 있을게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세시에 주차장으로와. 내가 먼저 차에가있을게. 애들한텐, 부모님이 데리러오셨다그래”

“감사합니다 선배님!”

약속 대로 세 시에 가방을 들고 살짝 나왔다. 중간에 마주친 쩌리선배들 한텐 부모님이 와계신다고 했다. 비상등이 깜빡깜빡 거리는 차로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선배가 타고 있었다. 검정색 E클래스. 좋은차 타네…'어? 아 이차! 기억나!' 비오는 면접날 물튀기고 지나간 차였다. 그러고 보니 그 얼굴이었다. 조수석 앞문을 열려는데 창문이 내려갔다.

“앞에 뭐가 많아서, 뒤에 타라ㅡ”

아ㅎㅎ 여자후배한테 부담 안주려는 모습 쿨해! 후배한테 사심없는, 따뜻하고 좋은 선배 느낌.

금새 시트가 따뜻해져왔다. 나는 몇마디 나누기도 전에 잠에 빠져버렸다.

...

까악ㅡ 까악ㅡ

하아… 하아… 하아…

까마귀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규칙적이고, 거친 남자의 숨소리에 내 눈이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