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a_lee

Diary - Prologue

Published: January 15th 2023, 3:11:11 pm

대학교 3학년이던 해의 가을.

여름방학 기간 우리 학부생들은 개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었고, 그 성과물을 발표하는 세미나는 9월 초에 학과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대학원생 및 전 학년 학부생들이 참여하고 해외 초청 연자 강연까지 있는 큰 심포지엄이었다.

포스터 발표는 점심시간에 진행되었고, 많은 교수님들과 연구자님들께서 준비된 다과를 들고 나의 포스터를 찾아 주셨다.

발표 시간 후에도 저녁까지 이어지는 강연에는 난 불참하려고 했다.

끝까지 참석해야 지만 학점에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는 조교의 반 협박은 과연 진짜일 지 늘 의심스러웠고, 나는 늘 하던 대로 대리 출석을 부탁하고 슬며시 가방을 들고 나섰다. 열과 성을 다한 발표 후에 따라오는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캠퍼스 정문쯤 왔을까, 그 때 ‘한서준’ 조교로부터 톡이 왔다.

“시아야, 어디야? 홀에 앉아있어?”

“오빠, 저 밖인데요 왜요?”

“나갔어? 야 너는 나가면 안 돼. 아무리 늦어도 5시 전까진 꼭 돌아와!”

“아 왜요?”

모든 강연까지 마치고 기념촬영 직전에 시상식 시간이 있었다.

“학부 3학년 이 시 아!”

좌장 교수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얼떨결에 단상 위에 올라가서,

학장님으로부터 상을 전달받고……

박수치는 청중에 인사하고……

고개를 들어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쭉 둘러보았다.

많은 사람들 사이 사이에는 3년간 나와 깊은 썸을 탔던 남자들이 군데 군데 섞여서 박수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후배 둘, 동기 하나, 학부 선배 셋, 대학원생 조교 셋, 교수님 한 분 이렇게 열 명. 3년 동안 이들 각자와 찍은 드라마가 스쳐 지나갔다.

“저를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적으로 써포트 해 주셨던 박ㅇㅇ 교수님께 가장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고, 실수투성이었던 저에게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연구를 도와주신 ‘한서준’ 조교님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어,, 그리고…”

하아…

열 명을 한 공간에 모아 놓고 상을 받고 나서, 그 속에서 박수를 받고 있으려니 헛웃음이 났다.

한서준 조교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란히 서서 박수를 치고 있는 ‘이현우’ 오빠와 ‘권지후’ 오빠는 나와의 그날을 떠올리고 있을까?

후배 ‘정지원’이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들어 답했다.

‘박교수님’은 나를 바라보지 않고 계셨다.

“그리고… 음… 정말 보람 있는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고… 어… 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단상에서 내려왔다.

여름 방학 동안 성실히 연구에 참여하고, 또 열심히 발표를 준비한 덕에 상과 상금, 그리고 겪기 힘든 이런 순간—내 연애사의 정점을 찍는 씬—까지 얻게 되어 기쁘면서도, 얼굴은 화끈거렸다.